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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나

    4년에 한 번, 한 달 넘게 지구 전체가 같은 경기를 봅니다. 결승전 하루에만 수억 명이 화면 앞에 앉습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지만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첫 대회에는 열세 팀이 나왔고, 유럽에서 배를 타고 남미까지 건너가야 해서 참가를 포기한 나라가 더 많았습니다.

    1930년, 배를 타고 간 첫 대회

    국제축구연맹 회장이던 쥘 리메가 세계 대회를 밀어붙인 결과, 1930년 우루과이에서 첫 월드컵이 열렸습니다. 개최지가 남미로 정해진 이유는 우루과이가 그 시기 올림픽 축구를 연달아 제패했고, 독립 100주년을 맞아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거리였습니다. 비행기로 오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어서 유럽 팀은 배로 보름 넘게 이동해야 했습니다. 결국 유럽에서는 네 나라만 참가했고 전체 참가국은 열셋에 그쳤습니다. 우승은 개최국 우루과이가 차지했습니다.

    이후 1934년 이탈리아, 1938년 프랑스 대회가 이어졌지만 두 대회 모두 이탈리아가 우승했습니다. 그리고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1942년과 1946년 대회는 열리지 못했습니다. 열두 해의 공백입니다.

    마라카낭의 침묵

    1950년 브라질에서 대회가 재개됐습니다. 이 대회는 결승전이 따로 없고 상위 네 팀이 리그를 벌이는 방식이었는데, 마지막 경기가 사실상 결승이 됐습니다. 브라질은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었고, 20만 명 가까운 관중이 마라카낭 경기장을 채웠습니다.

    결과는 우루과이의 2대 1 역전승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브라질에서는 이 경기를 지금도 마라카낭의 비극이라 부릅니다. 축구 경기 하나가 한 나라의 집단 기억으로 남은 초기 사례입니다.

    베른의 기적, 그리고 펠레

    1954년 스위스 대회 결승에서는 더 큰 이변이 나왔습니다. 당시 헝가리는 4년 가까이 지지 않은 팀이었고 조별리그에서 서독을 8대 3으로 꺾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결승에서 서독이 3대 2로 이겼습니다. 전쟁 직후의 서독 사회에 이 승리가 어떤 의미였는지는 지금도 자주 이야기됩니다.

    1958년 스웨덴 대회에서는 열일곱 살 선수가 등장했습니다. 펠레였습니다. 브라질은 이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뒀고, 1962년 칠레에서 연달아 정상에 오르며 강국의 자리를 굳혔습니다. 그 사이 1966년에는 잉글랜드가 안방에서 처음이자 아직까지 유일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트로피가 바뀐 이유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 브라질이 세 번째 우승을 했습니다. 당시 규정에 따라 세 번 우승한 나라는 트로피를 영구히 갖게 되어 있었고, 브라질이 쥘리메컵을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1974년부터는 새 트로피가 쓰이고 있습니다. 지금 우승팀이 들어 올리는 그 트로피입니다. 이번에는 영구 소장 규정을 두지 않아서, 우승국은 복제품을 받고 원본은 다음 대회 전에 반환합니다.

    1974년 서독 대회에서는 요한 크루이프가 이끈 네덜란드가 화제였습니다. 정해진 자리에 얽매이지 않고 선수들이 위치를 바꿔가며 뛰는 방식이 이후 축구 전술에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다만 우승은 서독이 했습니다.

    마라도나의 두 골

    1982년부터 참가국이 24개로 늘었습니다. 대회가 커지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1986년 멕시코 대회는 한 선수의 대회로 기억됩니다. 디에고 마라도나는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상반된 두 골을 넣었습니다. 하나는 손으로 밀어 넣은 골이었고, 심판이 잡아내지 못해 그대로 인정됐습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 진영에서 공을 잡아 다섯 명을 제치고 마무리한 골이었습니다. 같은 경기에서 나온 이 두 장면은 지금까지도 함께 언급됩니다. 아르헨티나는 그해 우승했습니다.

    1994년 미국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결승이 승부차기로 갈렸습니다. 브라질과 이탈리아가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브라질이 이겼습니다. 1998년 프랑스 대회부터 참가국은 32개로 늘었고, 개최국 프랑스가 브라질을 3대 0으로 꺾으며 첫 우승을 거뒀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2002년 대회는 한국과 일본이 함께 열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열린 첫 대회이자 두 나라가 공동으로 개최한 첫 사례입니다. 한국은 4강까지 올라갔고, 그해 여름의 기억은 지금도 국내에서 자주 소환됩니다. 우승은 브라질이 차지해 통산 다섯 번째 정상에 올랐습니다.

    2010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프리카 대륙 첫 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대회에서 스페인이 처음으로 우승했습니다. 짧은 패스를 이어가며 공을 오래 소유하는 방식이 정점을 찍은 시기였습니다.

    2014년 브라질 대회는 준결승 한 경기로 기억됩니다. 개최국 브라질이 독일에 7대 1로 졌습니다. 경기장 이름을 따 미네이랑의 참사라 불립니다. 우승은 독일이었습니다.

    메시, 그리고 스페인의 두 번째

    2018년 러시아 대회는 프랑스가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2022년 카타르 대회는 여러 면에서 예외적이었습니다. 중동에서 처음 열렸고, 현지 더위 때문에 대회 사상 처음으로 겨울에 치러졌습니다. 결승에서 아르헨티나가 프랑스를 승부차기로 꺾었고, 리오넬 메시가 마지막 도전에서 우승컵을 들었습니다.

    2026년 대회는 규모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함께 열었고 참가국이 48개로 늘면서 경기 수가 104경기까지 불어났습니다. 대회 기간도 39일에 이르렀습니다.

    결승은 뉴욕 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렸습니다. 스페인이 직전 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를 연장 접전 끝에 1대 0으로 이겼습니다. 스페인의 두 번째 우승이자, 20세기에는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팀이 21세기에만 두 번 우승한 기록이 됐습니다. 개인상은 골든볼에 로드리, 골든부트에 킬리안 음바페가 선정됐습니다.

    100년 가까이 이어진 것

    첫 대회에서 열세 팀이 뛰었고, 가장 최근 대회에서는 48개국이 104경기를 치렀습니다. 트로피가 한 번 바뀌었고, 두 번의 대회가 전쟁으로 사라졌습니다. 개최지는 남미에서 유럽으로, 다시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중동으로 옮겨 다녔습니다.

    그사이 변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것은 대체로 우승 기록이 아니라 특정한 장면입니다. 침묵에 잠긴 마라카낭, 손으로 넣은 골, 7대 1로 끝난 준결승 같은 것들입니다. 다음 대회에서도 아마 그럴 겁니다.